칩렛(Chiplet) 시대: 무어의 법칙이 끝나도 칩이 빨라지는 법
수십 년간 반도체는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더 많이' 넣어 발전했습니다. 무어의 법칙이죠. 그런데 이제 회로 선폭이 원자 몇 개 수준에 가까워지면서, 더 미세하게 만드는 비용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업계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하나의 큰 칩을 고집하지 말고, 작은 칩들을 레고처럼 붙이자.'
모놀리식의 벽: 클수록 망한다
전통적인 칩은 모든 회로를 하나의 실리콘 조각에 새기는 모놀리식(monolithic) 방식입니다. 칩이 커질수록 성능은 좋지만 치명적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수율입니다.
웨이퍼에는 불가피하게 미세한 결함이 박힙니다. 칩이 크면 그 안에 결함이 들어갈 확률도 높아져, 칩 하나만 불량 나도 거대한 면적을 통째로 버려야 합니다. 면적이 2배가 되면 불량 확률은 그 이상으로 뛰죠. 게다가 노광 장비가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최대 면적(레티클 한계, 약 858㎟)도 존재합니다. 칩을 무한정 키울 수 없는 물리적 천장입니다.
칩렛: 큰 칩을 작게 쪼개기
**칩렛(Chiplet)**은 큰 칩을 기능별 작은 조각으로 나눠 따로 만든 뒤,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다시 잇는 방식입니다. 작은 칩은 결함에 걸릴 확률이 낮아 수율이 좋고, 불량이 나도 그 작은 조각만 버리면 됩니다.
| 구분 | 모놀리식 | 칩렛 |
|---|---|---|
| 구조 | 단일 대형 다이 | 다수 소형 다이 결합 |
| 수율 | 면적 클수록 급락 | 조각별 높음 |
| 공정 | 전체 동일 공정 | 부분별 최적 공정 |
| 비용 | 대형화 시 폭증 | 상대적 절감 |
| 유연성 | 낮음 | 조합 자유 |
AMD가 이 전략의 대표 주자입니다. CPU의 연산 코어는 최신 미세 공정으로, 입출력(I/O) 부분은 굳이 비싼 공정이 필요 없어 저렴한 공정으로 따로 만든 뒤 합칩니다. '비싼 공정은 꼭 필요한 곳에만' 쓰는 영리한 절약이죠.
이종집적: 서로 다른 칩을 한 패키지에
칩렛의 진짜 위력은 **이종집적(heterogeneous integration)**입니다. 성격이 다른 칩들, 예컨대 연산용 로직 칩과 HBM 메모리, 심지어 다른 회사가 다른 공정으로 만든 칩까지 한 패키지에 모읍니다.
각 부품을 '가장 잘 만드는 공정으로' 따로 제작해 조립하니, 단일 공정으로는 불가능한 최적 조합이 나옵니다. AI 가속기가 대표적입니다. 거대한 GPU 다이 옆에 HBM 메모리를 바짝 붙여, 데이터 이동 거리를 줄이고 대역폭을 극대화합니다.
어드밴스드 패키징: 2.5D와 3D
칩렛을 어떻게 잇느냐가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입니다.
- 2.5D: 여러 칩을 **인터포저(interposer)**라는 미세 배선 받침판 위에 나란히 올려 잇는 방식. TSMC의 CoWoS가 대표적이며, AI GPU+HBM 결합에 쓰입니다.
- 3D: 칩을 수직으로 쌓고 **TSV(실리콘 관통 전극)**로 위아래를 직접 연결. 거리가 가장 짧아 가장 빠르지만, 발열 처리가 까다롭습니다.
[2.5D 구조]
로직칩 HBM HBM
└──────┬──────┘
인터포저(미세배선)
패키지 기판
선폭을 줄이는 대신 '칩을 옆으로, 위로 똑똑하게 잇는' 패키징이 새로운 성능 전쟁터가 된 것입니다. AI 칩 공급이 TSMC의 CoWoS 생산능력에 묶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왜 지금 칩렛인가
미세 공정 비용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 칩렛은 '무어의 법칙 둔화'를 우회하는 현실적 해법입니다. AI 칩처럼 거대하고 메모리를 갈구하는 반도체일수록 칩렛·패키징 없이는 만들 수 없습니다. 트랜지스터를 줄이는 경쟁이 칩을 잇는 경쟁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셈입니다.
한 줄 정리
칩렛은 큰 칩을 레고처럼 쪼개 수율을 살리고, 이종집적과 2.5D/3D 패키징으로 최적의 조합을 만듭니다. 무어의 법칙이 둔화돼도 칩이 계속 빨라지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이미지센서(CIS)란? 스마트폰 카메라를 움직이는 반도체 시장
스마트폰 카메라 화질을 결정하는 핵심 반도체가 바로 이미지센서(CIS)다. 빛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원리부터, 메모리 다음가는 반도체 시장으로 성장한 배경까지 정리했다.
실리콘 포토닉스란? 빛으로 데이터를 나르는 AI 데이터센터의 미래
AI 데이터센터에서 칩과 칩 사이 데이터 이동이 새로운 병목이 됐다. 전기 대신 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와 광 인터커넥트가 왜 주목받는지 풀었다.
온디바이스 AI 칩이란? 스마트폰·노트북에 들어온 NPU의 모든 것
클라우드 없이 기기 안에서 AI를 돌리는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가 스마트폰과 PC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왜 데이터센터 GPU 대신 작은 NPU가 필요한지, 전력·지연·프라이버시 관점에서 정리했다.